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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이야기

전 WSJ 특파원의 베네수엘라 체험기 -3-

WBDJOON 2020. 2. 16. 10:05

1장 베네수엘라 환전 전문가 '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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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 있는 매리어트 호텔의 해외지점 '르네상스 데 카라카스 라 카스텔라나'의 20층에서 숙박하는 건 굉장히 이색적인 경험이 될 수 있다. 이곳 객실들은 우아한 도시 전경과 킹 사이즈 침대, 42인치 평면 TV, 고속 인터넷, 24시간 룸서비스 등 고급호텔이 갖춘 일반적인 편의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 투숙객들은 호텔 내 수영장에서 마음껏 수영도 할 수 있고, 피트니스 시설도 이용할 수 있으며, 매일 뷔페식 조식도 즐길 수 있다.

 

 2015년 1월 기준으로 이 호텔의 평균적인 객실에서 하루 묵는 비용은 9469볼리바르다. 당시 베네수엘라의 공식 환율로 따질 경우 1503달러다. 이 말이 사실이면 르네상스 호텔은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투숙료를 받는 호텔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복환율제도를 운영하는 베네수엘라의 제2 환율로 객실 요금을 환산하면 이 호텔에 하루 묵는 투숙비는 789달러로 떨어진다. 물론 이 역시 뉴욕에서 바르셀로나까지 왕복 비행료에 해당하는 값비싼 액수다. 그런데 제3 환율로 계산하면 이곳의 하룻밤 투숙료는 190달러까지 내려간다. 아마도 이게 실제 호텔 투숙비에 해당할텐데, 막상 겪어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이 호텔에서의 저녁 식사 비용도 객실요금과 똑같은 미스터리가 있다. 이 호텔에 투숙객이라면 누구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호텔 내 레스토랑 '미하오'에서 520볼리바르를 내고 탄두리 치킨을 먹을 수 있다. 이 요리의 가격을 달러로 치면 얼마가 될까? 세 종류의 환율에 따라 달라진다. 제1 환율에서는 83달러, 제2횐율에서는 43달러, 제3 환율로는 10달러다. 달랑 치킨 요리 하나에 이런 여러 가격을 염두해두는 건 어려운 일이다.

 

 퀴즈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나는 2015년 1월 책을 쓰기 위한 취재를 위해 다시 이 호텔에서 약 3주간 머물렀고, 그 동안 나는 암시장에서 은밀한 협상을 통해 소위 '제4환율'로 불리는 불법적인 환율로 내가 가진 달러를 볼리바르로 환전했다. 결과부터 말하면 나는 이 호텔에서 하루 묵는 비용으로 실제로는 53달러를 지불했고, 미하오 레스토랑에서는 코스 요리를 즐기고 5달러보다 조금 더 많은 돈을 냈다. 전 세계에서 이와 거의 같은 수준의 호텔에서 묵고 식사를 한 뒤 내야할 돈보다 아주 저렴한, 아니 아주 극히 일부의 돈만 지불한 것이다.

 

 이게 바로 한 나라에 4개의 다른 환율이 존재하며, 동시에 생계에 필요한 돈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동시에 가장 저렴할 수 있는 베네수엘라라는 나라의 특징이다. 베네수엘라에서 달러화는 자동차나 집은 물론 물론 성냥 한 갑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베네수엘라 위성방송업체 '디렉TV'가 2014년에 기록한 매출은 볼리바르화로 얼마일까? 디렉TV 측은 자체 발간 책자에서 2014년 자사 수익이 9억달러라고 했는데, 이게 맞는걸까? 아니면 2억1600만 달러나 6000만 달러로 봐야하나? 디렉TV의 수익성은 어떤 환율이 가장 현실적인 가치를 반영하는 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베네수엘라의 복환율제도는 베네수엘라의 경제 규모를 판단하는 데도 영향을 미친다. 베네수엘라의 명목 GDP 규모를 달러로 평가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2014년 기준으로 따져보면 베네수엘라의 명목 GDP는 6580억 달러로 스웨덴을 능가하는 경제 대국이자 덴마크 GDP의 2배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제2 환율에 따라 3460억달러로 계산되어 말레이시아보다 조금 더 큰 경제 규모를 갖고 있다고 볼 수도 있고, 830억달러로 환산하면 글로벌 석유 기업 엑손모빌의 분기 평균 매출액보다 적은 GDP를 가진 나라로 볼 수도 있다. 심지어 암거래 시장에서 통용되는 환율을 적용하면 830억달러보다 더 적은 수치인 230억달러로 환산될 수도 있다. 230억 달러는 중국의 마윈이 설립한 알리바바 그룹이 2014년에 기록한 순수익과 비슷한 수준이다.

  

 지난 수년간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복환율 제도에 따라 제각각 다른 경제적 차원에서 살아온 것과 다름없다.  2015년 초를 기준으로 베네수엘라에는 달러를 벌어 암시장에서 팔아치우는 극소수의 사람들에겐 맥도날드 빅맥 버거 하나가 270볼리바르의 가치를 지닌다. 이는 약 1.5달러 수준으로,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빅맥 지수에 따르면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렇게 저렴한 가격으로 빅맥 버거를 파는 곳을 찾기 어렵다.  코카콜라 한 병은 얼마정도 될까? 52볼리바르로 달러로는 약 29센트인데, 미국에서 가장 저렴하게 콜라를 파는 곳에서도 이 가격은 찾기 힘들 것이다. 이렇게 베네수엘라의 경제적 성층권에 사는 사람들은 차 한대와 기사를 빌려 하루종일 카라카스를 돌아다녀도 50달러가 채 들지 않는다.

 

 대부분의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현실 세계는 이런 극소수의 상류층이 사는 차원과 매우 다르다. 이들이 LG전자가 만든 42인치 평면TV를 구입하려면 8만볼리바르가 필요한데, 이는 제2 환율로 따졌을 때 약 6667달러에 해당한다. 이는 최저임금을 받는 베네수엘라 근로자의 연 소득보다 더 많은 액수다. 봉급 생활을 하는 베네수엘라 국민들 모두 애플의 16기가바이트 용량의 아이폰을 너무나 사고 싶어하는데, 베네수엘라 사치품에 해당하는 이 아이폰은 시중에서 20만8000볼리바르에 판매되고,  '베네수엘라의 이베이'에 해당하는 온라인 상거래 사이트 'Mercadolibre.com'에서는 1만7333달러에 판매된다.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가 한푼도 쓰지 않고 3년간 모아야 아이폰을 구입할 수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