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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왕'의 애완용 하마가 콜롬비아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본문

배준용(기자)의 기사 아카이브/World News(국제뉴스 2018. 6 ~ 2019)

'마약왕'의 애완용 하마가 콜롬비아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WBDJOON 2019. 10. 30. 16:43

아프리카 대륙에만 사는 것으로 알려진 하마가 중남미 콜롬비아의 야생에서 번성하고 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26일자)에서 1970~80년대 전 세계 코카인 마약 거래를 주름잡던 콜롬비아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1949~1993)가 들여온 하마가 콜롬비아 야생에서 번성하며 토착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고 전했다. 에스코바르가 애지중지하던 하마들이 콜롬비아 야생에 적응해 토착 어류와 바다소(해우)의 일종인 매너티 등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스코바르는 미얀마의 쿤 사, 멕시코의 '엘 차포(땅딸보)' 호아킨 구스만과 함께 세계 3대 마약왕으로 불렸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유년 시절 뛰어난 학업 성적으로 대학까지 진학했지만, 코카인 밀매에 눈을 뜨면서 대학을 중퇴하고 코카인 밀매 사업에 뛰어들었다. 1970년대 초 콜롬비아 서북부 도시 메데진에서 '메데진 카르텔'을 조직하고 미국과 전 세계에 콜롬비아에세 재배 생산된 코카인을 밀매하기 시작했고, 그의 사업은 급속히 번창했다. 한 때 미국에 공급되는 코카인의 70~80%가 메데진 카르텔이 치자할 정도였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건설업 등으로 사업을 확장한 에스코바르는 1980년대에 세계 7대 갑부 반열에 올랐고, 1990년대 초 그의 자산은 약 300억달러, 현재 가치로 약 550억달러에 이르렀다고 한다. 메데진 카르텔이 코카인으로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던지 현금 다발을 묶는 고무줄을 사는데 매달 2500달러를 썼다는 설도 있다.

 

에스코바르가 세운 동물원 '하시엔다 나폴레스'의 정문. 현재는 시설 대부분이 철거되거나 개조된 상태다.

 

초갑부 반열에 오른 에스코바르는 메데진시 호화주택가에 요새를 방불케하는 호화 주택을 짓는 한편 메데진에서 동쪽으로 약 160km 떨어진 곳에 사설 놀이공원인 '하시엔다 나폴레스(Hacieda Napoles)'를 조성했다. 워터파크, 놀이기구 뿐 아니라 아예 사설 동물원을 꾸렸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기린, 코뿔소, 낙타, 얼룩말 등을 반입했는데, 특히 에스코바르가 각별한 애정을 보인 동물은 하마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동물원에서 들여온 하마 4마리를 보며 에스코바르는 '나의 기질과 하마의 기질이 쏙 닮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평소에는 온순하고 차분해보이지만, 화가 나면 악어까지 가차없이 물어죽이는 흉포함을 보이는 하마의 모습이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에스코바르는 코카인 밀매로 벌어들인 돈으로 콜롬비아 정계와 공무원, 검경, 판사까지 마음대로 주물렀다. 이들에게 막대한 뇌물을 줬고, 뇌물을 거절하는 사람은 카르텔을 동원해 가차없이 살해했다. 에스코바르의 명령으로 살해된 사람만 최소 400명에서 최대 5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편으로 그는 서민들에게 자선사업을 벌이며 정치적 영향력을 넓혔고, 1980년대 초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스스로 대통령이 되는 꿈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에스코바르가 밀매하는 코카인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있던 미국이 직접 사태에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에스코바르는 위기에 몰리게 된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콜롬비아 정부도 더 이상 에스코바르의 악행과 불법을 좌시하지 않고 그를 기소하려 든다. 궁지에 몰린 에스코바르는 콜롬비아 당국과 타협해 자신이 지은 호화 감옥에서 수감되는 차선을 택했다. 하지만 이런 호화 감옥 생활이 알려지면서 미국이 그를 직접 미국으로 연행하려 하자, 에스코바르는 탈옥해 자신의 카르텔과 지지자들을 동원한 무장 게릴라를 벌이게 된다.   

 

하지만 미국의 지원을 받은 콜롬비아 정부군의 추적은 계속됐고, 결국 에스코바라는 1993년 사살됐다. 이후 그의 주택과 동물원은 모두 불법 수익으로 간주되어 콜롬비아 정부가 몰수했는데, 이 때 하시엔다 나폴레스에 살던 동물들은 대부분 지역 동물원으로 옮겨지거나 해외 동물원으로 팔려나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공격성이 강한 코뿔소와 하마들이 야생으로 탈출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막달레나 강 인근 민가에 출몰한 콜롬비아 야생 하마

 

남미의 야생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코뿔소들이 곧 죽은 채로 발견된 반면, 하마들은 동물원 인근에 있는 막달레나 강 상류와 강 주변에 형성된 습지, 호수에 순조롭게 적응했다. 3~4마리에 불과했던 하마들은 왕성하게 번식한 결과 현재 약 70마리 이상이 막달레나 강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콜롬비아 생태학자들은 "하이에나 등 하마를 사냥하는 상위포식자가 있는 아프리카와 달리 콜롬비아 생태계에는 하마를 위협할 상위 포식자가 없다"며 "이대로면 하마의 수가 20년 내에 200마리를 가뿐히 넘게 될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에 말했다. 

 

콜롬비아 생태학자들은 야생 하마 수가 급증하면서 콜롬비아 토착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마가 습지와 강에 배출하는 똥은 물 속의 산소를 빨아들이는 성질이 있는데, 이로 인해 막달레나 강에 사는 토착 어류들이 폐사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또 막달레나 강에 사는 희귀 바다소 매너티가 하마와의 생존 경쟁에 밀려나 절멸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막달레나 강 인근 민가에 하마가 출몰해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도 벌어지고 있다. 

 

막달레나 강에 정착한 야생 하마와 새끼 하마

 

이에 콜롬비아 정부는 지난 2009년 민가에 출몰한 하마 1마리를 사살했는데, 동물보호단체들이 동물 학대로 정부를 고소했고, 법원은 향후 하마 사냥 및 포획을 금지한다고 판결했다. 이후 막달레나강에 사는 하마들을 아프리카 대륙에 돌려보내는 아이디어도 나왔지만, 생태학자들이 이를 반대했다. 막달레나 강에 사는 하마들이 근친교배로 태어난 개체들이라 아프리카 대륙에 돌아갈 경우 아프리카 하마 생태계를 교란할 위험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또 남미에만 있는 박테리아나 세균을 아프리카 대륙에 퍼트릴 위험도 제기된 상태다. 

 

이에 콜롬비아 생태학자들은 하마 전용 피임약을 야생 하마들에게 투여해 개체수를 조절하거나 자연소멸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돼지들을 상대로 하마 피임약을 임상 시험 중이며, 올 연말부터 피임약 투여가 시작될 예정"이라면서도 "하지만 이런 대처도 동물보호단체들이 문제 삼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