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용(기자)의 기사 아카이브/World News(국제뉴스 2018. 6 ~ 2019)

'친미(親美)'로 돌아선 에콰도르, 줄리언 어산지 체포 허용했다

WBDJOON 2019. 4. 13. 09:59

줄리언 어산지가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추방된 이유에 대해 에콰도르 정부는 “망명 조건을 어기고 망나니처럼 행동한 어산지 자신이 초래한 일”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외신들은 에콰도르가 어산지를 내쫓은 데에는 다른 속내가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1일(현지 시각) “어산지 추방은 미국과의 교역 증대와 관계 개선을 열망하는 레닌 모레노 에콰도르 대통령의 결단에 따른 것”이라고 보도했다. 전직 대통령이 밀어붙이던 반미(反美) 외교를 청산하고 친미(親美) 외교를 추진 중인 모레노 대통령이 미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미 정부에 눈엣가시 같은 어산지를 추방했다는 것이다. 

2012년 어산지의 망명을 허가했던 라파엘 코레아 전 에콰도르 대통령(재임 2007~2017년)은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함께 반미 외교에 적극적이었다. 차베스처럼 석유 수출로 번 돈을 빈민층 무상 지원과 공공부문 근로자 확대에 쏟아부어 ‘중남미 반미좌파의 대표 주자’ ‘제2의 차베스’로 불리기도 했다. 어산지의 신병 인도를 강경하게 요구한 영국 정부와 극한 갈등을 벌이면서까지 어산지를 감싼 건 코레아의 반미 외교 중 가장 상징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코레아는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미국 관리들이 나를 감시하고 있다”고 폭로하거나 자국 내 미국 대사를 추방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하지만 2017년 5월 그의 정치적 후계자로 알려졌던 모레노 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에콰도르의 분위기는 180도 뒤바뀌었다. 코레아 밑에서 부통령까지 지냈던 모레노가 대통령 취임 수개월 만에 친미·친시장 주의자로 전향한 것이다. 모레노는 지난해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을 만나 “무너진 양국 관계를 회복하자”고 선언하고 양국 군대의 합동 훈련과 정보 공유를 추진하기로 했다.  에콰도르는 콜롬비아와 함께 미국의 베네수엘라 독재자 니콜라스 마두로 축출에 가장 적극적인 중남미 국가이기도 하다.   

코레아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적 동치로부터 “배신자”라는 비난이 쏟아지지만, 모레노 대통령의 개혁은 흔들림이 없다. 전문가들은 “코레아의 반미 좌파 정책 탓에 침체에 빠진 경제를 살리는 게 시급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에콰도르는 코레아의 무상 정책으로 한 때 극빈층이 줄기도 했지만, 2014년 말 저유가가 시작되고 공공부채가 급증하면서 장기 침체에 빠졌다. 코레아의 반미 외교로 대미 수출이 급감한 영향도 적지 않다. 

모레노 대통령은 어산지 추방을 계기로 대미 관계를 대폭 개선하는 한편 공공부문 근로자를 줄이는 등 친시장 개혁도 속도를 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에콰도르가 지난 2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42억 달러(4조8000억원)의 구제금융을 받을 수 있었던 된 것도 모레노의 친미 기조에 미국이 호응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