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총격 테러] '지상 낙원' 뉴질랜드, 국민 4명 중 1명 꼴 총기 소유… 왜?
영국 가디언·뉴욕타임스(NYT) 등 외신들은 “이번 뉴질랜드 총격 테러의 피해가 커진 건 뉴질랜드 정부의 허술한 총기 규제 때문”이라고 했다. 범인 브렌턴 태런트는 범행 당시 반자동 소총 2정과 산탄총 2정 등 총 5정의 총기를 사용했는데, 5정 모두 뉴질랜드에서 합법적으로 구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16일(현지 시각) 영국 가디언 등은 “뉴질랜드는 구입한 총기를 경찰 당국에 등록하지 않아도 될 만큼 규제가 느슨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뉴질랜드 총기법에 따르면 뉴질랜드에서는 16세가 넘으면 누구나 권총 소지를 위한 총기 자격증을 딸 수 있다. 18세가 되면 대량 살상에 이용될 수 있는 반자동 소총을 구입·사용할 수 있는 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다. 판매된 총기를 등록하지 않다 보니 뉴질랜드 정부는 민간이 보유한 총기 수가 정확히 얼마인지도 알지 못한다.
총기 관련 단체의 실태 조사에 따르면 현재 뉴질랜드에는 약 120만정의 총기가 민간에 퍼져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뉴질랜드 전체 인구가 460만명인 걸 감안하면 국민 4명 중 1명이 총기를 가진 셈이다. 뉴질랜드 경찰 연합은 “범죄율이 낮아 부각되지 않았을 뿐, 뉴질랜드에서 발생한 범죄 상당수는 용의자가 총으로 무장하고 있다”고 했다.
뉴질랜드는 세계에서 살인범죄율이 가장 낮은 나라다. 국민 소득과 복지 수준은 높고 범죄는 적어 ‘지상 낙원’ ‘평화의 나라’로 불렸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많은 총기를 허용하고 있는 걸까. NYT는 “뉴질랜드의 총기 문화는 미국·영국·캐나다처럼 식민지 개척의 역사가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국은 19세기 초반부터 뉴질랜드를 무역·포경산업의 전초기지로 개척하기 시작했다. 영국군의 보호 아래 백인 이주민과 무역업자, 포경 선단들은 머스킷 총으로 원주민인 마오리족을 죽이고 영토를 강탈하며 개척지를 늘려 갔다. 마오리족도 이에 맞서 유럽 무역상에게 머스킷 총을 사들였다. 1845년부터 30여년간 이어진 마오리족과 영국·뉴질랜드 정부 간 전쟁에 총으로 무장한 뉴질랜드 개척민들이 민병대와 자경단으로 참가했다. 자연스레 뉴질랜드 사람들에겐 ‘총기는 생명·재산을 지키는 자위 수단이자 권리’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뉴질랜드인들의 총기에 대한 애착은 지금도 여전하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배경 삼아 사슴 등 야생 동물을 사냥하는 것이 인기 있는 레저 스포츠로 꼽힌다. 전원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야생동물이 집이나 목장에 침입하거나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잦아 총기가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NYT는 “이번 총격 테러를 계기로 뉴질랜드가 총기 규제를 두고 심각한 분열과 정쟁(政爭)에 빠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번 사건으로 정부의 허술한 총기 규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총기 소유를 옹호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날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총기법이 바뀔 것”이라며 규제를 강화할 뜻을 밝히자 총포상에는 총기 사재기를 하려는 사람들로 온종일 북적였다. 총기 관련 단체들은 “규제 강화라는 정부의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지나친 규제까지 수용할 순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출처: 2019년 3월 18일자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18/201903180007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