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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정부, 39명 숨진 제노바 모란디 다리 붕괴 사고 두고 "네 탓" 타령만

WBDJOON 2018. 11. 20. 14:15


2018년8월18일자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18/2018081800094.html


이탈리아 정부가 지난 14일 39명의 사망자를 낸 제노바의 모란디 다리 붕괴 사고 책임을 '네 탓'으로 돌리기에 바쁘다. 처음엔 도로 운영 기업에 책임을 묻겠다고 하더니, 이젠 유럽연합(EU) 탓을 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사고 책임과 정치적 비난을 피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책임론을 제기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제노바 모란디 다리가 붕괴할 때 함께 추락하다 지상 20m 상공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자동차에서 소방관들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차량 승객 2명 중 한 명을 구해 냈지만, 다른 한 명은 숨졌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반(反)EU 성향인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내무장관 겸 부총리는 16일(현지 시각) "EU의 정부 지출 제한이 없었다면 사회 인프라 시설 상태가 더 나았을 것"이라며 "이탈리아는 EU의 어리석은 지출 제한 규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지출을 제한하는 EU 때문에 다리 보수를 제때 못해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EU는 회원국의 균형재정을 위해 재정 적자 규모를 국내총생산의 3% 이내로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앞서 이탈리아 정부는 모란디 다리를 운영한 기업 아우토스트라데에 1억5000만유로(약 2000억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아우토스트라데의 모기업 아틀란티아의 모든 도로 운영 사업권을 회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러자 아틀란티아의 지분 30%를 보유한 패션 기업 베네통에도 비난의 불똥이 튀었다. 베네통은 1990년대 후반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고속도로 운영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베네통 일가는 살인마"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고, 베네통 의류 불매 운동도 벌어질 움직임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도했다.


이탈리아 정부의 '네 탓' 공방에 EU는 곧장 반박했다. 크리스티안 슈파흐 EU 집행위원회 대변인은 "EU는 이탈리아의 사회기반시설 투자를 권장했고, 지난 4월에도 이탈리아 고속도로에 대한 85억유로(약 11조원) 규모 정부 지원 계획을 승인한 바 있다"고 했다. 싱크탱크 유럽개혁센터(CER)는 "살비니의 발언은 모든 사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사고 발생 나흘째 구조 작업이 계속되고 있지만 무너진 다리의 콘크리트 잔해가 워낙 거대해 구조 작업은 난항을 겪고 있다. 17일 현재 사망자 39명, 부상자 15명으로 집계되고 있지만, 지금도 10~20명이 사고 잔해에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독일 DPA 통신 등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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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언론에서 이탈리아 정부가 EU와 사고 원인을 두고 갈등을 벌였다고 하는데, 표면적인 현상만 포착한 거라고 본다. 정확히는 이탈리아 정부가 억지를 부리고,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모양새다. 
  
살비니 부총리는 극우정당 '동맹'의 대표다. 과거부터 "EU의 정부지출 제한 규정에서 벗어나 정부 지출을 늘리자"고 주장했고, 그게 먹혀들어서 내무장관에 부총리까지 하게 됐다. 다음 회계연도 예산도 EU가 정한 3%를 넘어선 수준으로 지출 규모를 짜고 있고, EU한테 이런 예산안을 인정받으려고 시도 중이다.  

이런 와중에 "모란디 다리가 무너진 건 EU의 정부 지출 제한"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당연히 EU의 반박대로 살비니의 주장은 사실도 아닐뿐더러 참사를 자신의 정치적 명제의 근거로 삼은 것에 불과하다. EU와의 협상의 도구로 이번 참사를 이용하려는 것이라고 말해도 크게 무리가 아니다.  

더불어 이탈리아 정부가 지금보다 정부 지출을 늘리는 게 결코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탈리아 공공부채는 현재 연 국내총생산(GDP)의 132%로 유로존에서 그리스 다음으로 공공부채가 많은 국가다. 피나는 긴축을 해도 모자랄 판이다.  

이탈리아 정부가 사고가 난 다리를 운영하던 기업에 2000억원 벌금을 때린다고 속 시원하게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이 역시 전형적인 포퓰리즘이고 법치주의를 벗어나는 통치행위다. 사고가 난지 이제 고작 나흘째고, 사건 원인과 과실 여부 조사는 이제 시작 단계다. 다리가 대체 왜 무너진 건지 밝혀진 게 없는데, 다짜고짜 심증과 정황증거만으로 벌금을 때린다? 지금 단계에선 공권력의 횡포일 뿐이다. "이탈리아 정부가 자신들의 책임 회피를 위해 마구잡이로 책임론을 제기한다"는 전문가의 분석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