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원'에서 '노말 원'으로; 세계 최고였던 무리뉴의 몰락
영국 언론과 축구팬 사이에서는 '무리뉴 논쟁'이 한창이다. 18일 영국 명문 프로축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가 조세 무리뉴 감독을 해고한 것을 두고 "구단이 성적 부진의 책임을 감독에게 떠넘겼다"는 주장과 "무리뉴 감독이 자초한 일"이라는 말이 따른다.
해외축구를 꽤나 본 나로서는 후자 쪽에 맘에 기운다. 사실 한 때 나도 무리뉴의 리더십에 큰 인상을 받은 탓인지 근래 무리뉴가 보인 졸렬한 행보는 더 큰 실망감을 줬다.
무리뉴는 한때 '티키타카'를 창시한 펩 과르디올라 감독(맨체스터 시티)과 세계 축구의 양대 거장으로 꼽힌 인물이다. 2000년 포르투갈에서 축구 감독으로 데뷔한 그는 2003년 FC 포르투를 이끌고 자국 리그와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단박에 세계 최고 감독 반열에 올랐다. 자기 진영에 내려앉아 견고하게 수비 하다 빠르게 역습을 펼치는 모리뉴 감독의 전술을 두고 축구계는 “혁신”이라며 환호했다.
일각에서 "무리뉴의 역습축구는 지루하다"는 비판이 일었지만 무리뉴는 "축구에선 승자와 패자가 있을 뿐"이라고 받아쳤다. 그는 자신의 말을 결과로 입증했다. 2013년까지 첼시, 인테르 밀란, 레알 마드리드 등 명문 구단을 이끌며 유럽 3대 리그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데뷔 후 10년 간 그는 약 66%대의 승률을 기록했는데, 이는 축구 역사에서 비슷한 기록을 찾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기록이다. 그를 '스페셜 원(Special One)'이라고 부르게 된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하다.
티키타카로 FC 바르셀로나를 무적의 팀으로 만든 과르디올라의 발목을 잡은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무리뉴였다. 인터 밀란 감독 시절 무리뉴는 챔피언스리그에서 바르셀로나를 만나 "골문 앞에 버스를 세웠다"고 조롱당할 만큼 철저한 수비 축구로 바르셀로나를 물리쳤다. 굴욕적이라고 부를 만큼 점유율과 공격 의지를 버린 그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그의 그런 냉철한 면모와 강력한 카리스마에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은 "언젠가 무리뉴의 지도를 받아 보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이렇게 세계 최고의 감독으로 군림하던 무리뉴에게 이상 징후가 포착된 건 2015-2016년 시즌이었다. 전 시즌 리그 우승을 차지한 첼시는 개막부터 삐긋거리더니 급기야 리그 16위까지 추락했다. '첼시 선수들이 무리뉴를 몰아내기 위해 일부러 설렁설렁 뛴다'는 태업설이 언론에서 쏟아졌다. 그렇게 전 시즌 우승을 이끈 감독은 첼시에서 쫓겨났다.
이때만 해도 사람들은 첼시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2016년 맨유 감독으로 부임한 무리뉴는 누가 보아도 선수와 팬 모두가 싫어할 감독으로 변해 있었다. 무리뉴 부임 후에도 맨유가 기대 이하의 퍼포먼스를 보이자 무리뉴는 "선수들이 성숙하지 못하다" "선수들이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며 책임을 선수 탓으로 돌렸다.
언론과 축구 전문가들은 무리뉴의 전술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세계 축구의 흐름은 빠른 공수 전환과 전방 압박이 주를 이루는데 무리뉴의 축구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공격적인 선수들을 지나치게 수비적으로 활용한다는 비판도 나왔고, 맨유 선수들이 소극적인 무리뉴 감독의 전술에 불만을 품고 있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선수의 자존심을 긁는 그의 지도 방식도 이제 자존감이 강한 젊은 선수들에겐 도리어 반감만 일으킨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런 언론과 전문가들의 지적에 대한 무리뉴의 반응은 예전처럼 시크하거나 자신만만하지 않았다. 그는 화를 냈다. 한 기자 회견에서는 "지금 영국에 있는 감독 중 나보다 우승 트로피를 많이 든 사람이 있느냐"며 자뻑과 분노를 동시에 선보였다. 그것은 옛 성공에 안주해 정체되어 남탓만 하는 전형적인 꼰대였다.
어수선한 맨유는 지난 두 시즌 동안 리그 우승을 하지 못했고, 이번 시즌에는 중위권과 중상위권을 오갔다. 결국 라이벌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1대3으로 완패하자 맨유 구단은 무려 2700만 유로(347억원)의 위약금을 모리뉴에게 주고 그를 해임했다. 무리뉴는 리버풀과의 경기 후 "상대 팀 수비수 로버트슨은 쉴 틈 없이 뛰어다녔다"며 상대 선수를 칭찬했다. 이는 '맨유 선수들은 열심히 뛰지 않았다'는 간접적인 비판이기도 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축구가 빠르게 진화하는 동안 정작 모리뉴는 스스로 진화하지 못했다"고 했다. FT는 모리뉴와 대조되는 사례로 그의 최대 경쟁자인 과르디올라 감독을 들었다. 티키타카 바르셀로나를 세계 최고의 팀으로 만든 과르디올라는 2012년에 돌연 자진 사임했다. 그가 밝힌 사임 이유는 "바르셀로나에서 더 이상 새로운 전술적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였다. 바르셀로나에서 더 이상 자신을 발전시킬 동기부여도, 아이디어도 없다는 것이었다. 발전이 없는 곳에선 미련 없이 떠나겠다는 게 그의 철학이었다.
1년 뒤 독일 바이에른 뮌헨 감독을 맡은 과르디올라 감독은 점유율과 패스 조직력을 강조하는 스페인 축구와 다른 거칠고, 빠르고, 돌발 변수가 난무하는 독일 축구를 체득했다. FT는 "독일에서의 경험으로 과르디올라 감독은 티키타카 전술에 강력한 압박 수비 전술을 더하며 발전했다"고 했다.
2016년 영국 맨체스터 시티 감독에 부임한 과르디올라가 보여주는 축구는 실제로 과르디올라의 진화와 성장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맨체스터 시티의 축구는 전방부터 상대를 강하게 압박하고, 공수 전환이 빠르며, 그러면서도 공격부터 수비까지 모두 볼을 점유하며 경기를 지배한다. 무리뉴가 꼰대로 변한 사이 과르디올라는 여전히 세계 축구계의 전술적 혁신을 리드하는 '핫'한 감독으로 자리잡고 있다.
‘스페셜 원’이라는 명성에도 실패하고 떠나는 리더를 위한 배려와 존중은 없었다. 해고 당일 무리뉴는 훈련장에 출근하자마자 구단으로부터 해임 통보를 받고 쓸쓸히 떠났다. 그의 해임이 공식 발표되자 맨유 팬들은 "진작 잘라야 했다"며 환호했고, 맨유의 라이벌 구단 팬들은 "무리뉴를 제발 해고하지 말아 달라"며 조롱했다. 옛 성공에 안주해 발전하지 않는 리더의 말로는 참담하다는 명제 앞에선 '스페셜 원'도 특별한 예외가 아니었다.
무리뉴의 차기 행보는 어떻게 될까. 부진을 겪는 레알 마드리드가 다시 그를 부를 가능성이 조심스레 언급되고 있다. 그는 전처럼 레알을 영광의 길로 이끌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엔 "아니오"다. FT는 "무리뉴가 이제 스스로를 새롭게 만들기 위해 분투 해야 할 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