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가 호주에 "국기 바꿔라" 주장한 이유
2018년 7월 27일자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27/2018072700260.html
윈스턴 피터스 뉴질랜드 총리대행이 지난 23일 국영 방송 TVNZ에 출연해 "호주 국기는 뉴질랜드 국기를 베껴서 만들었다"며 "속히 호주 국기를 교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호주에 있는 뉴질랜드인들이 푸대접당하고 있다는 이유로 양국 감정이 미묘한 상황에서 이웃 국가 간 국기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두 나라 국기는 닮긴 닮았다. 모두 청색 바탕으로 영국 국기 유니언잭이 국기 왼쪽 구석에, 남십자성이 국기 가운데 그려져 있다. 두 나라가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점이 반영됐다. 호주 국기는 하얀 별 6개, 뉴질랜드 국기는 붉은 별 4개라는 점은 다르다. 뉴질랜드 국기는 1860년대부터 상선들이 달기 시작해 1902년 공식 국기로 지정됐다. 호주 국기는 1901년 공모전을 거쳐 지정돼, 시간으로만 치면 뉴질랜드 국기가 오래됐다.
뉴질랜드에서는 호주 국기와 헷갈리는 게 싫다는 여론이 예전부터 많았다. 2016년에는 국기 교체 국민투표까지 갔다가 57% 반대로 부결됐다. 국민투표로도 국기를 못 바꾸니 이번엔 아예 호주에 국기 교체를 요구한 것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피터스 총리대행 발언 후 일간 뉴질랜드 헤럴드의 설문 결과 응답자 62%가 "호주가 국기를 바꿔야 한다"고 답했다.
호주는 "두 국기가 실제로 사용된 시점은 큰 차이가 없고, 베꼈다는 주장도 명확한 근거가 없다"고 응수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논란을 전하며 "두 나라 간 사이가 나빠질 때마다 종종 벌어졌던 일"이라고 했다. 2014년 호주의 외국인 관리 정책이 강화되면서 이후 추방된 뉴질랜드인이 1400여 명에 달한다. 지난달 호주 당국이 17세 뉴질랜드 소년을 성인을 구금하는 시설에 가둔 사실이 밝혀져 양국 관계가 악화됐다고 CNN은 전했다.
------------------------------------------------------------------------------------------------
지면 제약으로 못 담은 호주-뉴질랜드 국기에 관한 썰들.
1. 두 나라 국기 속 별 갯수도 다른 데, 사실 별 모양도 다르다. 호주 국기에는 칠각형 큰 별, 육각형 별, 오각형 모양의 작은 별이 있다. 뉴질랜드 국기 속 별은 다 오각형이다.
2. 호주 국기 속 큰 칠각형 별은 호주에 속한 7개 주를 상징한다. 음모론으로 과거 6개주였던 호주가 뉴질랜드를 끌어들일 것을 생각해서 칠각형으로 만들었다는 설도 있음.
3. 미국이 동부 해안에 흩어져있던 여러 주의 식민지였듯이 출발했듯, 호주도 단일 식민지가 아니라 6개 주(State)로 나뉘어진 식민지였다고. 뉴질랜드는 6개주와 구별되는 다른 주였는데, 영국 입장에서는 호주 식민지 주 하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곳이였음.
4. 1890년대부터 호주 6개주와 뉴질랜드가 독자적인, 단일한 연방정부 구성을 논의하기 시작했는데 도중에 뉴질랜드가 이탈. 그래서 호주에 있던 6개 주만 독자 연방정부를 수립해 오늘날 호주가 됐다고. 피지도 이 논의에 꼈다가 뉴질랜드처럼 이탈했고, 그래서 뉴질랜드가 호주가 아닌 뉴질랜드가 됐듯이 피지도 그냥 피지가 됐음.
5. 뉴질랜드는 1850년대에 이미 독자적인 헌법과 정부를 구성했지만 자치권을 인정받지 못한 식민지 상태였다. 1902년 자치정부로 독립했고, 1907년 영연방 일원으로 가입했다. 호주 역시 현재도 영연방 소속이긴 함. 물론 둘은 엄연한 독립국이자 주권국. 하지만 지금도 형식적으로 영국에서 5년 임기의 총독을 파견하고 있긴 함(총독 앙개꿀).
6. 호주가 국기를 정하려고 연 공모전에서 최종 당선자는 총 5명이었다. 5명이 내놓은 디자인이 거의 비슷했기 때문. 이 중 한 명은 윌리엄 스티븐슨이라는 배타는 선원이었는데, 뉴질랜드 출신이었다. 그래서 "호주가 뉴질랜드 국기를 베꼈다"는 소스로 인용되기도.
7. 호주 국기는 처음에 두 종류였다. 하나는 빨강 바탕, 또 하나는 오늘날 국기와 같은 파랑 바탕. 빨간 바탕은 상선용, 파랑 바탕은 정부 소유 선박용.
8. 호주 국기가 정해진 뒤 당시 호주의 시사 평론가들은 "뉴질랜드 니네도 호주 일원이 되고 싶으면 별 몇 개만 국기에 더 그려놓으면 되겠다"는 개드립(노잼...)을 치셨다고.
9. 커밍아웃한 애플 CEO 팀 쿡이 작년 '호주에 동성 간 결혼 찬성 여론이 높다'는 트윗을 올리다가 뉴질랜드 국기를 첨부해서 올렸었다고. 그러고 몇 분 뒤 호주 국기로 고쳐서 올림. 그만큼 뉴질랜드 국기와 호주 국기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브라질 리우 올림픽에서도 메달 시상식에 두 나라 국기를 바꿔달아 뉴질랜드 국민들이 ㅂㄷㅂㄷ하셨다능...
10.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뉴질랜드가 호주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서 뉴질랜드 쪽이 호주보다 국기 컴플렉스가 더 심하다고.
실제로 2016년 카자흐스탄에 뉴질랜드 사람이 입국을 하려고 했는데, 카자흐 출입국 심사원이 뉴질랜드를 호주의 일부라고 진지하게(?) 착각해서 뉴질랜드 여권을 위조 여권이라고 간주하고 뉴질랜드 사람을 불법 입국 시도한 혐의로 구금해버린 일도 있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