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검열·매수로 아프리카 여론 장악하려는 중국
지난달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FOCAC)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아프리카에 600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선언한 동시에 ‘5불(不) 원칙’을 제시했다. 중국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아프리카 국가들의 내정에 관여하지 않으며, 중국과 아프리카 국가들과 대등하고 공정한 협력 관계를 만들어 가겠다는 게 5불 원칙의 취지다. 회의에 참석한 아프리카 53개국 정상은 시 주석의 발언에 손뼉을 쳤고, 아프리카 언론들은 일제히 “중국과 아프리카가 윈-윈(Win-win)하는 협력 관계를 더 강화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아프리카 전문 기자인 인도 출신 아자드 에사는 달랐다. 지난 2016년부터 남아공 신문 ‘인디펜던트 미디어(Independent Media)’에 매주 칼럼을 기고한 그는 “중국이 신장·위구르 자치구 내 이슬람교도를 탄압하는데 아프리카 정상들은 모두 침묵했다”는 요지의 칼럼을 냈다. 칼럼이 발행된 날 인디펜던트 미디어는 에사에게 “이번 칼럼은 온라인에는 게재되지 않을 것”이라고 통보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에는 “지면 변경으로 당신의 칼럼난을 없애기로 했다”고 알려왔다.
에사 기자는 지난달 16일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에 기고한 글에서 자신에게 벌어진 일련의 일들을 폭로하며 “중국이 아프리카 언론의 침묵을 사들이고 있다”고 했다. 중국 국영기업 또는 민간 언론사가 아프리카 언론사의 지분을 인수하고, 이를 볼모로 중국에 비판적인 기사·칼럼을 검열하는 언론 장악 시도가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디펜던트 미디어의 지분 20%는 중국 국영 기업 두 곳이 2013년에 사들여 보유하고 있다. 캐나다 일간 ‘글로브 앤 메일’은 “지분 인수 후 인디펜던트 미디어에서 중국을 비판하는 칼럼은 줄어든 반면 중국에 우호적인 내용은 늘었다”고 지적했다. 시 주석이 5불 원칙을 제시한 지 이주일 새 벌어진 일이다.
중국은 수년 전부터 막대한 자본력과 영향력을 앞세워 아프리카 여론을 장악하고 있다는 게 외신들의 지적이다. 중국에 비판적인 서방 언론을 아프리카 미디어 시장에서 밀어내고 중국의 여론 영향력을 높이겠다는 속셈이다. 아프리카 언론사들의 지분을 인수해 중국에 비판적인 기사를 통제하고, 중국에 비판적인 학자에 불이익을 주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중국 관영 방송 CCTV의 국제 뉴스 채널 CGTN(China Global Television Network)이 지난 2012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개국한 ‘CGTN 아프리카’에서도 어김없이 중국식 검열 시스템이 적용된다. 현지에서 채용한 아프리카인 기자도 예외가 아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CGTN 아프리카 기자의 절반이 현지인인데, 이들이 편집 회의에서 보도하기로 정한 기사는 CGTN 베이징 본사에 있는 간부의 승인이 있어야 보도할 수 있다. 아프리카 전역에 발행되는 ‘차이나 데일리 아프리카’와 잡지 ‘차이나프리카(ChinAfrica)’도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중국을 비판한 교수들은 입국 비자가 거부되거나 추방 조치를 당한다. 남아공 내 중국 전문가로 알려진 로스 앤쏘니 교수는 올해 초 중국 대사관으로부터 입국 비자를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앤쏘니 교수는 학내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중국 대사관 직원은 내가 강의에서 대만과 티베트, 신장·위구르 자치구, 문화대혁명을 가르친 것이 비자가 거절된 이유라고 말했다”며 “중국에 긍정적인 강의 내용을 늘리지 않으면 앞으로 중국에 절대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는 경고도 받았다”고 했다.
케냐의 저명한 법학 전문가이자 중국에 비판적인 패트릭 오티에노 교수는 ‘아프리카 내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관한 특강을 하러 잠비아에 갔다가 공항에서 추방 조치를 당해 곧장 귀국해야 했다. 잠비아는 중국으로부터 수십억 달러의 차관을 받은 대표적인 친중 국가다. 잠비아 정부는 “오티에노 교수를 추방한 건 안보상의 이유”라는 궁색한 해명을 내놨다.
중국의 ‘검열 본능’은 대통령 연설에도 손을 뻗친다. 나미비아 현지 언론에 따르면 장이밍 주 나미비아 중국 대사가 지난달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FOCAC) 정상회의 직전 하게 게인고브 나미비아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자에게 “중국을 정치적으로 지지하며 중국-아프리카의 관계를 높게 평가하는 내용을 연설에 포함하라”고 말했다. 이를 전해 들은 게인고브 대통령은 장 대사에게 “당신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해선 안 된다. 우리는 당신의 꼭두각시가 아니다”라고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아프리카 언론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점점 커질 것으로 보인다. 아프리카의 디지털 방송 시장은 이미 중국 민영 위성 방송 업체 ‘스타타임스(StarTimes)’가 사실상 석권한 상태다. 스타타임스는 지난 2007년부터 위성 방송 수신기 설치비는 10달러, 방송 수신료는 월 1달러로 책정하는 저가 정책으로 기존 위성 방송 업체들을 밀어내고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위성 방송 업체로 군림하고 있다. 아프리카 30개국 2000만 가구에 CGTN을 비롯해 중국 드라마·영화, 중국 프로축구 중계 방송 등을 송출한다.
스타타임스는 ‘아프리카 내 디지털 방송 보급을 확대한다’는 명목으로 2015년부터 아프리카 각국 정부와 협력해 오지 마을 1만여곳에 태양광으로 작동하는 위성 방송 수신기와 TV를 설치해주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 사업의 예산은 중국 정부가 각국 지방 정부에 차관을 제공하는 형태로 지원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