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한 강제수용소 탄압에 한족마저 신장 위구르 '대탈출'
중국 정부의 위구르족 탄압이 자행되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최근 한족(漢族) 주민들이 대거 이탈하는 '엑소더스(Exodus·대탈출)'가 벌어지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22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중국 공산당이 위구르족 주민들을 대거 납치해 강제 수용소에 구금한 탓에 노동력이 부족해져 자치구 경제가 침체에 빠졌기 때문이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분리·이탈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려는 중국 정부의 폭압적인 정책이 자치구 경제와 주민들이 생활 기반을 무너뜨린 것이다.
FT에 따르면 신장 자치구 제2 도시인 쿠얼러는 지난 3년새 한족 주민과 사업가들이 대거 이탈해 2016년 50만명에 이르던 도시 인구가 현재는 절반 가까이 줄어든 20~30만명까지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자치구 공식 통계에는 현재 쿠얼러시 인구가 약 47만명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쿠얼러에서 본토로 이주한 익명의 한족 출신 사업가 다수는 FT에 “호구 조사 등에 집계되지 않은 사람들이 대거 쿠얼러에서 빠져나가 현재 인구는 3년 전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FT는 "신장 자치구에서 자유롭게 이주할 수 있는 사람들은 본토에서 이주한 한족 출신 주민들이기 때문에 쿠얼러에서 이탈한 이들 대부분은 한족"이라고 전했다.
쿠얼러는 중국 전체 석유 매장량의 7분의 1이 매장되어 있는 중국 최대 석유·천연가스 생산지다. 유전 개발이 본격화한 2000년대에는 '석유 붐'이 일면서 경제가 급성장했고, 덩달아 한족 이주민도 대폭 늘었다. 2006년에 12만명 수준이던 쿠얼러시의 인구도 10년만에 약 50만명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석유 붐'은 자치구 내 위구르족들의 반중 (反中) 정서도 덩달아 부추겼다. “석유로 생긴 부(富)를 한족 주민과 공산당이 모두 앗아간다”는 반감이 퍼지면서 2000년대 후반부터 위구르족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폭동과 테러가 잇달았다. 2009년에는 위구르족과 한족 간 충돌로 수백 명이 사망하는 대규모 유혈사태가 벌어진 데 이어 2014년 4월에는 자치구 주도(主都) 우루무치에서 폭동이 일어나 40명이 죽었다. 이후로도 위구르족 독립, 분리를 요구하는 테러 단체들이 관광서 등을 겨냥해 간헐적인 테러를 벌였다.
위기감을 느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6년 베이징에서 특별대책회의를 열고 자신의 심복인 천취안궈(陳全國·63) 당시 티베트 자치구 공산당서기를 신장 자치구 공산당 서기로 임명했다. 천취안궈는 2014년부터 티베트 내 분리독립 시도를 말살해 공산당 내에서 ‘시진핑의 쇠망치’로 불린다.
신장 자치구를 안정시키라는 특명을 받은 천서기는 신장에 부임하자마자 숨 쉴 틈 없는 감시체계를 구축했다. 최근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는 '신장위구르 강제수용소' 정책이 시작된 것도 이때다. 현재 약 180만명의 위구르족이 강제 수용소에 구금되어 한족 동화(同化)를 위한 세뇌 교육과 강제 노역을 하고 있으며, 이 중 일부는 고문과 폭행, 강간 등 심각한 인권 탄압에 노출된 상태다.
천서기는 당시 시험 단계에 있던 안면인식 카메라도 자치구 내에 대거 도입해 '중국식 빅브라더' 감시 체계를 시범적으로 신장 자치구에 구축했다. "골목마다 경찰서가 있다"는 말이 돌 정도로 공안서와 공안요원을 대폭 확충하고 위구르족 주민들의 DNA와 안면 정보를 강제로 수집했다. 주민들의 휴대전화에 감시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해 실시간으로 위치 및 동태를 추적하기도 한다. 천서기는 지난 13일 미국 하원이 통과시킨 '신장 위구르 법안'의 제재 대상에 올랐다.
쿠얼러에서 이탈한 한족 사업가들은 FT에 “강제수용소 등 가혹한 탄압 정책이 본격화한 2016년부터 자치구 경제가 급격히 침체했다”고 말했다. 공안 당국이 위구르족 주민들을 마구 납치해 강제 구금하자 당장 필요한 노동력이 부족해지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쿠얼러에 한 노점상은 “이곳엔 최근 일할 사람을 찾기 어려운 게 문제다. 사람이 없어서 돈벌이가 사라졌다”고 FT에 말했다. 이에 석유 붐과 더불어 자치구로 이주해온 한족 사업가와 한족 주민들이 사업을 접고 다시 본토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치구 정부 통계에 따르면 자치구 내 고정자산 투자액은 2016년부터 2년 새 36% 감소했다.
위구르족을 겨냥한 가혹한 감시 체계로 한족 이주민들이 느끼는 피로감도 '엑소더스'의 또다른 요인이다. 쿠얼러에서 사업을 하다 최근 본토로 이주한 한 중소기업체 사장은 “신장 자치구에서 쇼핑을 하러 가면 안면을 스캔하고, 신분증을 스캔한 뒤 가방 검사를 일일이 받아야 한다"며 "물건 하나를 살 때 마다 신분증을 제시해야 할 정도로 일상적인 삶에 대한 압박이 너무 강하다"고 FT에 말했다. 자치구의 분리 독립을 막으려는 폭압적인 치안 정책이 결과적으로 한족 주민들의 대규모 이탈과 경제 침체를 일으킨 셈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 간부 사이에서도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최근 발령 기피 1순위 지역이다. 한 소식통은 “신장 자치구에서는 당 간부들도 수 주 동안 하루도 쉬지 못할 정도로 위구르족 주민들을 감시하는 격무에 시달린다”고 SCMP에 말했다. 왕양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지난해 4월부터 올해 7월까지 세 차례나 신장 지역을 방문하고 이 문제를 시 주석에게 보고했을 정도로 기피 현상은 심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중독자’이자 엄격하기로 소문난 천서기의 타박도 간부들이 신장 자치구 발령을 꺼리는 요인이다. SCMP는 소식통을 인용해 “천서기는 위구르족 뿐아니라 한족 공안, 공무원들에게도 공포의 대상”이라고 전했다. 천서기는 돌연 아무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신고를 제대로 접수하는지, 신고 후 몇 분만에 출동하는 지 ‘불시검문’을 하며 아랫 사람들을 다잡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신장 자치구로 발령이 난 공산당 간부 일부는 가족들을 베이징 등 동부 대도시에 두고 홀로 신장 자치구에서 머무는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