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용(기자)의 기사 아카이브/World News(국제뉴스 2018. 6 ~ 2019)

제임스 쿡 선장 상륙 250주년 맞은 뉴질랜드, 역사 갈등 격화

WBDJOON 2019. 10. 8. 18:31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1728~1779)의 뉴질랜드 상륙 250주년 계기로 뉴질랜드에서는 해묵은 역사 갈등이 다시 불붙었다. 뉴질랜드 정부가 쿡 선장의 상륙을 기리는 기념행사를 추진하자 쿡을 칭송하는 백인계 주민과 쿡을 비난하는 원주민 마오리족 후손들이 찬반으로 팽팽히 나뉜 것이다. 

 

‘쿡 선장(Captain Cook)’으로도 알려진 제임스 쿡은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탐험가로 꼽힌다. 1768년부터 11년간 태평양 전역을 탐험해 현재와 거의 비슷한 태평양 지도를 완성했다. 하와이를 처음 발견한 서양인도 쿡 선장이다.  

 

뉴질랜드 정부 예산으로 재현된 인데버호

 

그는 1768 탐험선 인데버(endeavor)호를 타고 영국에서 출발해 1769 10월 서양인으로 처음 뉴질랜드에 상륙했다. 뉴질랜드를 처음 발견한 서양인은 아니다. 뉴질랜드를 처음 발견한 서양인은 네덜란드 탐험가 아벨 태즈만(1603-1659)이다. 당시 동남아시아 향료제도(몰루카제도)를 확보하고 국제 향신료 무역 독점을 추진하던 네덜란드는 파푸아뉴기니와 솔로몬 제도 일대에도 탐험대를 보냈다. 이 무렵 태즈만이 1642년 우연히 뉴질랜드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는 해안가에서 원주민의 공격을 받아 상륙하지 못했다. 대신 고국의 질랜드(Zealand) 지역의 이름 따 '새로운 질랜드(New Zealand)'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쿡 선장은 태즈만과 달랐다. 그는 일행과 뉴질랜드 북섬 기스번에 상륙한 뒤 마오리족 원주민 9명을 살해했다. 영국 역사학계는 “마오리족이 환영의식을 해주려 하자 쿡 선장 일행은 이를 공격 의사로 오인해 살해했다”고 결론 내렸다. 이후 쿡 선장은 뉴질랜드 해안 전체를 탐사하고 호주 동부 해안으로 나아갔다.

 

이후 영국은 쿡 선장의 오세아니아 탐험을 토대로 호주와 뉴질랜드를 자국에 편입하고 19세기부터 식민지를 건설했다. 이에 마오리족 후손들은 쿡 선장을 원주민을 차별하고 멸시한 제국주의 침략의 상징으로 여긴다.

 

쿡 선장 상륙 250주년 행사가 다가올수록 마오리족의 반감과 분노가 커지자 영국 뉴질랜드 담당 대표 로라 클라크가 지난 2일 마오리족 대표들을 직접 방문해 눈물을 흘리며 과거 역사적 과오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하지만 마오리족 대표들은 “유감 표명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영국 왕실 인사가 직접 찾아와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8일 뉴질랜드 기즈번 항에서는 쿡 선장의 뉴질랜드 상륙을 재현하는 행사가 열렸다. 정부 예산으로 재현한 인데버호가 지난달 28일부터 뉴질랜드 주변을 항해하다가 이날 쿡이 상륙했던 기즈번 항구에 입항했다. 항구에서 열린 인데버호 환영 행사에는 백인계 주민과 재연 행사를 규탄하는 원주민 마오리족 후손 등 수천여명이 모여 서로 다른 목소리를 냈다.

 

백인계 주민들은 대체로 “마오리족의 분노를 이해하지만, 쿡 선장의 상륙은 뉴질랜드가 발전한 계기”라고 주장했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데임 제니 십레이는 “쿡 선장의 상륙을 비난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가 뉴질랜드에 엄청난 기여를 했으며 자랑스러운 유산을 남겼다고 보는 사람도 많다”고 영국 가디언에 전했다. 쿡 선장의 상륙과 영국의 진출이 없었다면 뉴질랜드가 오늘날과 같은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없었다고 보는 시각이 깔려있는 것이다. 

 

반면 마오리족 후손들은 “쿡 선장 상륙을 기념행사는 제국주의를 옹호하고 원주민들이 고통받은 역사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이런 행사에 세금을 쓰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외쳤다. 이들은 쿡 선장의 탐험대가 뉴질랜드뿐 아니라 태평양 탐험 도중 여러 곳에서 원주민을 상대로 강간과 살인을 저지른 행적도 문제 삼는다. 마오리족 후손들은 수년 전부터 쿡 선장의 동상을 철거하라고 시위를 벌이거나 동상에 낙서하기도 했다.

 

양측의 갈등이 커지자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강조했다. 지난 5일 대국민 연설에서 아던 총리는 “그들(마오리족)이 호소하는 역사적 고통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모두 역사의 반쪽만 말해왔다. 역사에 대해 더 많은 대화, 개방된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대화와 토론으로 역사의 양면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