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축구)

치차리토, 세비야로 이적 + 현대 축구 빠른 변화와 '작은 콩'의 몰락

WBDJOON 2019. 9. 3. 00:55

작은 콩 치차리토가 이번 여름 이적 시장 막바지에 800만 유로의 이적료로 웨스트햄을 떠나 세비야로 합류했다. 


근래 EPL을 보면 마치 축구 기계들이 축구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평균적으로 무난한 기본기, 기계처럼 다져진 근육들. 스포츠과학이 발달하면서 근래 축구선수들의 체격과 기술은 점점 표준화되고, 최적화된다. 통계 과학의 발달로 더욱 정밀해진 현대 축구 전술과 표준화된 선수들이 합쳐지면서 경기 수준은 점점 더 높아지고 치열해진다. 선수들의 선수 생명도 길어졌고, 구단들은 포지션에 최적화된 선수들을 재빨리 수급하기도 점점 더 쉬워지고 있다.

 

'작은 콩' 치차리토(하비에르 에르난데스)는 이런 흐름을 거스르는, 보기 드문 선수라 강렬한 인상을 줬다. 원석 그대로, 멕시코 축구의 개성을 온전히 담은 그대로 최전성기 맨유를 이끌던 퍼거슨 전 감독의 선택을 받았다. 슈퍼서브 겸 1.5군 스트라이커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데 특히 큰 경기에 강하고, 위치 선정이 좋으며 승부 근성이 좋은 면모는 박지성을 많이 닮았었다. 앳된 외모에 다람쥐처럼 잽싸게 문전으로 쇄도해 골을 터트리고 환하게 웃는 모습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퍼거슨의 맨유가 종식되면서 그의 전성기도, 어린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 일찍 끝나버렸다. 독일 레버쿠젠에서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상위 리그 중위권 팀 주전 정도의 실력을 보여주다가 웨스트햄으로 이적하며 다시 영국 축구 무대로 넘어왔지만, 예전같은 인상은 주지 못했다.

 

치차리토의 이른 몰락은 현대 축구의 쓸쓸한 단면, 즉 개성 있는 선수들이 생존하기 어려워진 현실을 반영한다. 치차리토는 위치선정과 득점에 타고난, 마치 필리포 인자기와 같이 공격수의 핵심적인 능력만 쏙쏙 빼가진 원석같은 선수지만, 반대로 현대 축구가 요구하는 공격수의 다재다능함이 너무 부족하다. 슛팅 외에는 킥 대부분이 투박하고, 시야도 넓지 않고 덩치가 산 만한 수비수들과 맞서며 볼을 오래 간수하기엔 체격도 신장도 적당하지 않다. 그가 최전성기 시절 맨유에서 빛날 수 있었던 건, 다이렉트하면서도 창의적인 면을 갖춘(두 가지를 동시에 갖추기는 아주 어렵다) 퍼거슨의 전술에 화룡점정처럼 장착된 덕분이었다.

 

탐욕의 대명사 벨라라비의 노패스에 빡친 치차리토

 

그런 치차리토가 이번 여름 이적 시장 막바지에 스페인 명문구단 세비야로 다시 한 번 둥지를 옮기기로 했단다. 전환과 스피드를 강조하는 EPL과 달리 조직력과 기술을 강조하는 스페인 전술은 그의 투박한 면모를 어쩌면 보완해줄지도 모르겠다. 현대 축구의 발전은 점점 더 치열한 경쟁으로 박진감을 주지만, 반대로 단점도 장점도 뚜렷한 선수들이 점점 자리를 잃는 것 같아 아쉬울 때가 많다. 멘디에타, 네드베드, 지단, 베컴, 트레제게, 리켈메, 마켈렐레 등 개성이 뚜렷하면서도 월드클래스 급 반열에 올랐던 선수들이 한 팀에서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고, 장점은 살려주며 함께 뛰던 시절을 즐겼던 해축아재의 막연한 넋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