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용(기자)의 기사 아카이브/World News(국제뉴스 2018. 6 ~ 2019)

국가 신용도 하락에 재무장관 사임...아르헨티나, 거센 선거 후폭풍

WBDJOON 2019. 8. 19. 10:55

좌파 포퓰리즘 ‘페론주의(페로니즘)’를 내세운 좌파 후보 알베르토 페르난데스가 대선 예비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아르헨티나가 거센 선거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국제 신용 평가사들이 아르헨티나 신용 등급을 일제히 내린 데 이어 재무장관이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의 포퓰리즘 정책에 반발해 사임하는 등 혼란이 점점 커지는 양상이다. 

 


대선 예비선거 결과가 발표된 12일(현지 시각)부터 시작된 아르헨티나 금융 시장의 혼란은 일주일 내내 이어졌다. 페소화 가치는 일주일 새 약 22%가량 하락했고, 12일 하루 새 주가가 37.9% 폭락한 메르발(MERVAL) 지수도 이후 약간의 회복세를 보였지만 일주일 간 주가의 약 31%가 증발했다. 

이는 이번 예비 선거에서 페르난데스 후보가 마크리 대통령에게 압승한 결과가 반영된 것이다. 아르헨티나 대선은 득표율 1.5% 이하의 군소 후보를 걸러내는 예비 선거를 거쳐 본선을 치루며, 본선에서 1위가 45%이상을 득표하지 못하면 1,2위 후보가 다시 결선 투표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 예비 선거에서 페르난데스가 47%를 득표하면서 32%에 그친 마크리 현 대통령을 크게 앞지르자 오는 10월에 열리는 본선에서 페르난데스가 당선되는 것이 확실시 되는 분위기다. 

이에 국제 신용 평가 회사인 피치는 16일(현지 시각) 아르헨티나의 신용 등급을 ‘B’에서 ‘CCC’로 두 단계 하향 조정했다. CCC 등급은 투기등급(정크 등급) 내에서도 낮은 수준으로, 아프리카 잠비아·콩고와 같은 수준이다. 피치는 “좌파 후보가 압승을 거둔 예비선거 결과에 따라 디폴트(채무불이행)와 채무 재조정 가능성이 커진 점을 반영했다”며 “국제통화기금(IMF)과 발을 맞춰온 마크리 대통령의 경제 정책이 중단될 우려도 커졌다”고 평가했다. 이날 S&P도 “금융시장 혼란이 이미 취약한 아르헨티나 재정을 상당히 약화시켰다”며 신용등급 ‘B’ 에서 ‘B-‘로 낮췄다. 

예비 선거 대패로 충격에 빠진 마크리 대통령은 피치의 분석대로 친시장·긴축 기조를 버리고 포퓰리즘 정책으로 급선회했다. 지난 14일 마크리는 근로자 소득세 인하, 최저 임금 인상, 90일간의 유가 통제, 복지 보조금 확대 등에 총 7억4000만달러(9000억원)를 정부가 추가로 부담하는 서민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아르헨티나는 지난해 IMF로부터 57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긴축재정과 세금 인상 정책을 유지하기로 했지만, 당장 재선이 급한 마크리가 포퓰리즘 민심에 편승하기 위해 이를 뒤집어 버린 것이다. 

이에 정부 내에서도 파열음이 일고 있다. 마크리 정권의 경제 정책을 총괄해온 니콜라스 두호브네 재무장관<사진>은 17일(현지 시각) “지난 예비선거 패배에 따라 마크리 행정부는 대대적인 경제 정책 쇄신이 필요하다”며 사임했다. 자신의 경제 정책 실패를 사임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아르헨티나 현지 언론들은 “두호브네는 사임 전 마크리가 발표한 서민 지원 정책이 IMF와 합의한 재정 목표를 위반할 가능성이 크다고 반발했다”고 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들은 아르헨티나 경제가 앞으로 더 큰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페소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외채 상환 부담도 덩달아 늘었고, 수입품 가격이 급등해 연 50% 수준인 인플레이션율이 더 높아질 공산도 크다. 긴축재정과 세금 인상 기조가 무너지면서 아르헨티나가 IMF에 54억달러의 추가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진행 중인 협상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아르헨티나가 또다시 디폴트를 맞는 게 아니냐는 시장의 관망도 점점 힘을 얻는 분위기다. 아르헨티나는 1816년 독립 이후 현재까지 총 8번 디폴트에 처한 전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