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용(기자)의 기사 아카이브/World News(국제뉴스 2018. 6 ~ 2019)

'페론주의' 부활 조짐 아르헨티나, 하루새 주가 38% 폭락

WBDJOON 2019. 8. 14. 15:15

친(親)시장 우파 성향의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대선 예비선거에서 좌파 포퓰리즘 ‘페론주의’를 표방하는 좌파연합 후보 알베르토 페르난데스에게 예상 밖의 큰 패배를 당하면서 12일(현지 시각) 아르헨티나 금융시장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전날 열린 예비 선거에서 페르난데스 후보는 총 47.7%를 득표해 32.1%를 얻은 마크리 현 대통령을 15%포인트 차 이상 따돌렸다. 아르헨티나 대선은 득표율 1.5%가 안되는 군소후보를 걸러내기 위한 예비선거를 거친 뒤 본선을 치룬다. 본선에서 45% 이상 득표한 1위 후보가 나오면 그 후보가 바로 대통령에 당선되지만, 1,2위가 45% 이상을 얻지 못하면 두 후보가 결선 투표를 치뤄 최종 승자가 대통령에 취임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 예비 선거 결과로 오는 10월 27일 열리는 본 선거에서 좌파 후보 페르난데스가 결선 투표에 가지 않고도 마크리 현 대통령을 꺾을 가능성이 현저히 높아졌다. 페르난데스가 여론 조사 결과보다 더 큰 격차로 승리하자 이날 부에노스아이레스 증시의 메르발(MERVAL) 지수는 개장 직후부터 폭락세를 보이더니 전장 대비 37.9% 폭락한 2만7530.80에 장을 마쳤다. 블룸버그 통신은 “달러 기준으로 환산하면 주가가 전장 대비 48% 하락한 것”이라며 “지난 70년간 전 세계 증시에서 나타난 낙폭 중 사상 둘째로 크다”고 전했다. 

환율·채권시장도 덩달아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이날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는 한때 전장 대비 30%까지 추락했고,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이 1억500만달러를 내다팔며 환율 방어에 나선 결과 외환 시장은 18.8% 하락한 달러당 57.30페소로 거래를 마쳤다. 채권 가격도 평균 25% 폭락했다. 

기업가 출신인 현 마크리 대통령은 4년전 대선에서 ‘경제 살리기’를 기치로 내걸고 당선됐지만, 경제는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해 아르헨티나 물가상승률이 50%에 육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외신과 전문가들은 “아르헨티나에서 좌파 포퓰리즘이 부활하면 경제 회복의 길이 더욱 험난해질 것이라는 게 시장의 반응”이라고 분석했다. 페르난데스가 집권할 경우 마크리 정부의 긴축재정 정책은 폐기될 공산이 큰 데, 이 경우 자본 유출과 외채 상환 부담이 더 커져 아르헨티나가 또다시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는 분위기다. 블룸버그 통신은 “(예비 선거 결과로) 아르헨티나가 앞으로 5년 내 디폴트에 빠질 가능성이 종전 49%에서 75%로 급등했다”고 전했다. 

전날 일찌감치 선거 패배를 인정했던 마크리 대통령은 이날 금융시장의 혼돈을 언급하며 “이는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미리 보여준 예시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며 본 선거에서 예비 선거 결과를 뒤집겠다고 공언했다. 반면 페르난데스는 이날 아르헨티나 금융시장 혼란의 책임을 마크리의 실정 탓으로 돌렸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마크리는 본선에서 결과를 뒤집겠다고 했지만, 이미 대세는 페르난데스로 완전히 기울었다"며 "마크리가 레임덕에 빠지지 말고 현 임기 말까지 경제 관리에 주력하는 게 이후 행보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