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용(기자)의 기사 아카이브/World News(국제뉴스 2018. 6 ~ 2019)

'높이 182m' 인도의 세계최대 동상, 왜 간디가 아닐까

WBDJOON 2018. 11. 20. 18:34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 사두벳 섬에 세워진 높이 182m 세계 최대 동상 '통합의 상(像)'의 제막식이 지난 2018년 10월 31일에 열렸다. 동상의 주인공은 사르다르 발라브바이 파텔(1875~1950) 인도 초대 부총리다.


‘파텔 동상’으로도 불리는 이 동상은 앞서 세계 최대 동상이었던 중국의 중원대불(128m)보다 54m 더 높고, 자유의 여신상(93m)보다 약 2배 높다. 5년의 공사기간 동안 총 4억3000만 달러(약 4900억원)의 정부 예산과 1850톤치 동(銅)이 소요됐다. 

그런데 인도에 세워진 세계 최대 동상의 주인공은 왜 간디, 네루처럼 인도를 상징하는 인물이 아닌 파텔 전 부총리일까. AFP 통신과 BBC 등은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이끄는 인도국민당(BJP)의 힌두민족주의(힌두교를 중심으로 인도 사회를 발전·통합하려는 우파 이념)가 반영된 결과”라고 했다. 세계 최대 동상의 주인공이 정치 셈법으로 정해졌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파텔은 간디·네루와 더불어 인도 독립을 주도한 정치 지도자다. 하지만 셋의 성향은 제각각 달랐다. 파텔은 힌두민족주의를 주장한 반면 간디는 힌두교-이슬람교 간 화합을 강조했다. 네루는 사회주의자인 동시에 정교분리를 중시했다. 


이들이 활동할 무렵 힌두민족주의자들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힌두교도의 나라 인도와 무슬림의 나라 파키스탄의 분립을 선호했다. 반면 간디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열을 강하게 반대했고, 이에 힌두민족주의자들의 미움을 샀다. 훗날 간디를 암살한 인물 역시 힌두민족주의자였다.   


파텔은 힌두민족주의자였음에도 종파, 정파 간 단합과 단결을 중시했고 이에 간디, 네루와도 적극 협력했다. 이렇게 보면 인도의 독립을 주도한 세 인물 중 힌두민족주의를 내세우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현 집권당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 바로 파텔인 것이다. 네루의 경우 그 후손들이 현재 인도 제1야당인 인도국민회의(INC)를 대대손손 이끌어왔다는 점에서 현 집권당이 선호할 수 없는 인물이다. 


힌두민족주의자들은 오래 전부터 “파텔이 간디와 네루에 막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며 ‘파텔 띄우기’에 열을 올렸다. 구자라트 주 총리 시절부터 파텔 동상 건립을 추진한 모디 총리도 파텔의 열혈 지지자다. 그는 “파텔이 (네루 대신) 인도의 초대 총리가 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도의 거대 동상 건립은 이게 끝이 아니다. 인도 뭄바이시에는 17세기 말 북인도에 마라타 왕국을 세운 차트라파티 시바지(1630~1680) 왕의 동상이 세워지고 있다. 2021년 완공될 이 동상의 높이는 212m로 파텔 동상보다 높다. 이 사업에는 총 5억7000만 달러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시바지 왕 동상을 세우는 의도도 그다지 순수하지 않다. 힌두민족주의자들은 힌두교도의 나라인 마라타 왕국을 세우고 영국 등 외세에 맞선 시바지 왕을 파텔 못지않게 추앙한다. AFP 통신은 “파텔 동상과 시바지 왕 동상은 내년 인도 총선에서 인도국민당이 표심을 동원하는 데 활용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모디 정부의 ‘동상 정치’를 향한 반발도 커지고 있다. 야당을 중심으로 “인도 국민의 절반 이상인 빈농(貧農)인데, 동상 건립에 10억 달러(1조1150억원)의 예산을 쓰는 건 낭비”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인도 정부는 “파텔 동상이 매년 250만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여 경제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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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텔 동상에 관해 못 다 적은 이야기들. 


1. 파텔 동상이 10월 31일 제막하는 건 파텔이 1875년 10월 31일 생이기 때문(나와 생일이 같은 위인은 처음 본 것 같다;;)

인도 정부는 파텔 동상을 대대적인 관광상품으로 만들겠다며 동상 인근에 호텔 및 휴양시설을 짓고 파텔 동상에서 레이져 쇼를 할 수 있는 설비도 갖췄다고 한다. 물론 파텔 우상화를 위한 파텔 기념관 등도 마련된 상태. 


2. 파텔은 힌두교 전통과 시장 중심의 경제 정책,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우파 힌두민족주의자였다.  파텔 동상의 이름이 통합의 상인 이유도 파텔이 생전에 외쳤던 통합의 정신을 기린다는 뜻. 


3. 인도국민당이 파텔을 밀고 있지만,  정작 파텔은 현 제1야당인 인도국민회의 소속이었다. 네루가 초대 총리에 취임할 때 부총리 겸 내무장관을 역임했다. 


4. 2021년에 완공될 시바지 왕 동상의 크기는 어마어마하다.  영국 가디언이 만든 그래픽을 보면 두 동상이 얼마나 거대한 지 조금은 체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