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용(기자)의 기사 아카이브/World News(국제뉴스 2018. 6 ~ 2019)

볼턴·폼페이오?… 이란 옥죄는 '저승사자'는 맨들커 美 재무차관

WBDJOON 2019. 7. 22. 09:40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대(對)이란 압박 정책은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베네수엘라·이란·쿠바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한 태도에는 수퍼 매파로 불리는 볼턴 보좌관의 입김이 세다는 게 그간의 분석이었다.

 

 

그런데 미 시사월간지 '애틀랜틱'은 최신호(현지 시각 20일 발간)에서 "대이란 '최대 압박' 전략의 중심에 있는 사람은 볼턴도, 폼페이오도 아닌 시걸 맨들커〈사진〉 미 재무부 차관"이라고 전했다. 이란을 옥죄는 '숨은 저승사자'가 따로 있다는 얘기다.

미 재무부 테러·금융정보 담당 차관인 맨들커가 대이란 정책의 중심으로 부상한 건 외국과의 물리전(戰)을 피하고 싶은 트럼프 대통령의 심중이 반영된 결과라는 게 애틀랜틱의 분석이다. 미·이란 갈등이 연일 고조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연신 이란을 향해 강경 발언을 쏟아내지만, 내심으로는 이란과의 전면전을 꺼린다는 게 전·현직 미 관리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대신 '전가의 보도'인 경제 제재로 이란 정부를 굴복시켜 미국에 유리한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겠다는 게 트럼프의 큰 그림이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의 원유 수출 및 이란 내 기업 활동에 대한 제재를 줄줄이 발표했는데, 이 과정에서 제재 설계와 실행을 총괄하는 맨들커 차관이 자연스레 대이란 정책의 중심으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2017년 6월 재무차관으로 부임한 맨들커는 '미국의 제재가 가진 힘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제재 신봉자'다. 그는 세계 여러 권위주의 정권의 핵심 인사를 겨냥한 제재를 발표할 때마다 "나쁜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하는 데는 돈이 필요하다" "미 행정부의 제재로 세계를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고 늘 말해왔다.

제재에 대한 그의 신념은 개인사에서 비롯됐다. 맨들커의 부모는 모두 폴란드 출신 유대인으로, 조부모 중 세 사람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 정권의 '인종청소'에 희생당했다. 맨들커의 부모는 그에게 나치 정권의 감시를 피해 땅굴을 파고 숨어지냈던 유년 시절의 경험을 말해줬다고 한다. 맨들커는 "미 행정부에서 일하고 나서 미국이 2차 대전에 참가하기 전 수십억 달러에 이르던 나치 정권의 자산에 대한 제재를 내렸고, 이것이 독일의 전쟁 범죄를 막는 데 큰 기여를 한 사실을 알고 놀랐다"고 말했다. 애틀랜틱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이란 제재 목표는 이란을 굴복시켜 핵 관련 협상을 재개하는 것이지만, 맨들커에게는 '나쁜 정권이 나쁜 행동을 하지 못하게 원천 차단한다'는 또 다른 목표가 있다"고 분석했다.

맨들커는 2000년 펜실베이니아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다 미 법무부 관료로 입성했다. 법무부에서는 줄곧 테러 관련 업무를 수행하며 제재 전문가로 성장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맨들커의 상관이었던 스튜어트 레비 전 재무차관은 "9·11 테러 이후 그녀는 늘 책상에 앉아 알카에다를 옥죄일 새로운 제재를 끊임없이 연구했다"고 말했다. 9·11 이후 미 재무부의 경제 제재는 숫자가 늘고 제재 방식도 복잡해졌는데, 여기에 맨들커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부시 행정부 시절 미 재무부 관리였던 후안 자라테는 "미국의 제재가 더더욱 복잡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으며, 제재를 만들어내는 분야에서 여전히 미 재무부가 창의성을 발휘할 여지가 크다"며 제재 전문가인 맨들커 차관이 앞으로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전망했다.

맨들커 차관이 부상하면서 제재를 앞세워 미국의 의지를 관철하는 '트럼프식 제재 외교'도 전성기를 맞은 양상이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불법 행위를 저지른 타국 인사·단체를 제재한 건수는 연 400~600건 수준이었는데,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2017년에는 944건, 지난해에는 무려 1474건으로 제재가 급증했다. 맨들커 차관은 북한의 비핵화를 압박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독자 제재 역시 총괄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1월 한국을 방문해 강력한 대북제재 및 압박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